it's a bit oldfashioned

대한민국, 올림픽

oldfashioned 2014. 2. 19. 23:01

 

 

 

우리나라, 대한민국.

1등 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1등하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따라서 1등을 하지 않으면 좌절하고 1등하지 않는 이들을 비난하는

무서운 나라 대한민국. 그래서 내가 사랑하고도 증오하는 나라, 대한민국.

 

글을 쓰지 않는 동안 꽤 많은 일이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아 밤에 점점 늦게 자게 되어 아침 10시깨나 잠에 드는, 그것도 자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야 해서 자는 불상사가 두 달여 동안 계속되었고, 사진 정리는 차마 엄두도 내지 못했으며, 마지막이랍시고 야심차게 뛰어든 동아리 연극은 개판 오분전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던 와중 소치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방송에선 내내 김연아를 떠들어댔다.

 

김연아.

대한민국의 피겨영웅. 그녀는 주로 남자들에게 많이 쓰는 영웅이라는 표현을 가히 받을 만한 사람임엔 틀림없다.

그녀의 정확한 일대기에 대해서는 자신할 바 없으나, 한국이 피겨 불모지였을 때부터, 그러니까 불모지라 함은 인기도 많지 않고 지원도 적은 분야를 의미하고자 하는데, 여하튼 그 때부터 부단히 노력하여 지금과 같은 결실을 맺은 것이다. 듣자하니 우리나라 링크는 그 수도 적고 빙질도 좋지 않았으나 그나마 롯데월드의 링크가 가장 상태가 좋아, 많은 이들이 라인 밖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동안 그들의 시선을 받아가며 꽤나 집중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마치 동물원의 재주꾼이 된 기분이 들었음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연습을 계속했다고 한다.

 

매년 올림픽이나 갖은 종목을 다루는 대회를 보노라면 불만이 이는 이유를 공감하는 이가 한 명쯤은 있으리라.

아니, 어디엔가 구석 구석에 많을지도 모른다.

첫째, 1등을 하는 선수의 종목에만 유난히 관심을 가진다는 것.

둘째, 1등을 하는 선수가 1등을 하지 않으면 과할 정도로 아쉬워한다는 것.

 

첫째 이유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컬링을 보세요, 첫 출전인데도 이번에 꽤 알려졌잖아요?"

그들의 노력은 분명 보상받아야 함이 당연하거늘, 예쁜 외모로 관심을 받아 알려지는 것은 그들도 원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했다. 정말로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운동 선수들은 정신력과 체력이 모두 받쳐주어야 성공이 가능한, 어찌 보면 초인적인 힘을 가져야 하는 사람들이다.

거기에 실력이 받쳐주면 더할 나위 없는 것인데, 이 세 가지 요소에 대하여 정상적인 비판을 받았다면 그들도 자신들이 미처 몰랐을 수도 있는 부분에 대해서 반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외모로 떠버리면 답이 없다. 아무리 노력에 의해 종목이 유명해지거나 결과가 좋아도 외모 때문이라고 생각하니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하면 예뻐서 뜬 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웃겨 죽겠다.

 

이슬비 선수가 귀엽게 생기고 싶어서 귀엽게 생겼을까? 귀여워서 대표팀에 발탁됐을까?

 

 

 

대한민국의 이 고질적인 개놈의 외모지상주의가 타파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정말 망할 것이다.

이력서에 사진? 그래. 안타깝게도 '외모'와 '이미지'는 다른 개념이라 회사의 '이미지'를 위하여는 붙일 수 있지.

그렇다 치자. 그런데 또 안타깝게도 많은 회사들이 원하는 '이미지'들은 다수 비슷한 성향을 띤다.

두루 잘 지낼 것 같은 편안한 인상, 보기만 해도 마음이 밝아지는 웃는 상, 날카롭지 않은 호감형 얼굴.

그러니 그렇지 않은 이들은 실력이 좋아도 괜히 사진을 붙이면서 불안에 떠는 거다.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그렇게 태어난 게 아닌데...

 

 

 

글이 산으로 갔네. 난 참 평소에 가지를 너무 많이 치는 것 같다. 그러니 살기가 힘들어.

무튼 다시 돌아와서, 내가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보기가 불편한 것은 그녀가 내 질투를 끌어내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 질투라는 것이 조금 복잡한 것인데, 그녀가 비율이 좋아서만도 아니고, 자태가 아름다워서만도 아니고, 내가 갖지 못하는 유연함이 있어서만도 아니다. 바로 김연아 선수만 바라보는 우리나라 대중들의 시선이 짜증이 나기 때문이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김연아 선수가 좋은 성적을 거두었을 때 우리나라 선수들은 곽민정 선수에게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제2의 김연아 선수가 되라면서.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 곽민정 선수가 나오지 않자 그들은 곧바로 자만심을 이야기했다. '제2의 김연아', '제2의 김연아' 하니까 흐뜨러진 것 아니냐면서. 기가 막힐 노릇이다.

 

물론, 곽민정 선수에게 관심을 갖던 대중과 곽민정 선수에게 자만심을 이야기한 대중이 같은 대중은 절대 아닐 것이다. 내가 몇 천 개의 모든 댓글들을 본 것도 물론 아니다. 하지만 댓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이들이 만드는 '인기 많은 댓글'이 대체적인 여론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결국 대한민국의 그 지긋지긋한 냄비근성 이야기가 다시 대두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관심 종목이 된 피겨의 1등 김연아 선수에게는 굉장히 많은 인터뷰 기회가 있고 그에 따라 본인의 생각을 대중에게 자주 어필할 수 있다. 그러니 그런 자리에서 김연아 선수가 겸손하게 본인만의 경기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기회도 동시에 많아진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비관심 종목인 선수들에게는 그러한 기회도 비교적 적어 아쉬울 뿐이다. 루지나 컬링을 들어보자. 그래, 쓰고 생각해보니 컬링이야 꽤 많은 영상을 본 것 같다. 그러나 루지... 그 위험하고 아찔한 종목에 이번에 처음 도전했다고 들었는데, 별다른 말이 없다. 오히려 첫 도전이 감격스러운 것 아닌가? 운동 선수들에게 노력이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1등을 줄 수 있을만큼, 다른 사람이 감히 평가할 수 없는 것인데, 왜 피겨는 굳이 찾아서 보지 않아도 눈에 채일 만큼 채점 기준과 지금까지의 기록, 심지어는 경쟁 선수들의 영상까지 비교 분석해주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다른 종목은 그렇게 하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1위가 아닌 것들에 대한 내 동정일 수도 있고 오기일 수도 있다. 난 1등이었던 적도 있지만, 물론 아니었던 적이 더 많으니까. 또 어떻게 보면 내가 1위를 선망하기 때문일까? 그래서 1위가 아닌 것들을 1위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나로 하여금 이런 불평 불만을 쓰게 만드는 것일까?

 

아사다 마오 선수. 트리플 악셀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입방정 선수라고 얘기한다. 안타깝다. 분명 그녀도 잘 하는 선수임은 틀림 없다. 실수 없이 연기하는 김연아 선수에 비해서는 아니지만. ISU 채점 방식이 PCS 부문에서 달라졌을 때 일본의 로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사실을 누가 알지? 아닐 수도 있잖아. 그녀는 끝까지 정정당당하게 싸우길 원했을 수도 있잖아. 일본이 지들 멋대로 비겁하게 굴었을 수도 있잖아...

 

대한민국 국민 중 대체 누가 그 정확한 진실을 알 수 있을까? 로비를 하고 받은 장본인들이 아닌 이상.

참 추측하고 결론 짓기 좋아하는 건 전 세계 공통일 것이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믿고 싶은 것들이 중요하지.

나도 그러한 현상의 희생양이라 또 예민해진다. 그렇게 따진다면 진실은 어디에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만...

 

 

 

ㅋㅋ 요즘 생각이 너무 많아서 뭘 썼는지도 모르겠네. 뭘 썼는지도 모르겠다고 변명하는 것도 결국 이 글을 볼 몇 안 될 지나가는 사람들 눈총이 무서워서겠지. 모든 일에 눈치 보고 사는 내가 거지같고 한심하다. 지금도 하고 싶은 말을 보내달라는 팸플릿 제작자에게, 할말이 없으므로 그냥 빈 상태로 넣어달라고 하려다 다른 사람들 눈치가 짜증나서 따옴표 두 개라도 붙여서 공백을 넣어놨으니. 그것도 예전의 나라면 못 했을 짓이다. 사실 내가 제일 하고 싶었던 말은 '할 말 없음' 이었다. 정말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안 하면 욕할 테니까, 뭐라도 해야 해서, 따옴표라도 붙여놨다.

 

 

 

이 글을 언제 다듬을지는 모르겠지만, 되게 정리 안 되어서 더러워보이는 글이지만, 이렇게 너저분한 것들을 솔직하게 쓸 수 있게 조금이라도 변화된 내가 요즘은 좋다... 나도 나를 속이고 있었던 기분이 든다. 적어도 나는 나를 속였으면 안 되는데, 나는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제일 배려 잘 하고 제일 이해 잘 하고 제일 성실하고 제일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속여왔던 기분이 든다. 물론 난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거기에 대한 양심적인 찔림도 전혀 없었다. 난 위에서 열거한 사람 그 자체였으니까. 고민인 건, 나도 때론 희생하고 싶지 않고 때론 남들 기분 따위 신경 쓰고 싶지 않고 때론 이해가 안 가고 때론 하기 싫고 때론 안주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런 욕구를 죽여버리고 위에서 열거한 대로 사는 지금의 내가 과연 위에서 열거한 사람이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인지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때론 그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인데 그 사실을 내가 받아들일 자신이나 있는 걸까...

 

뭐지? 나 꼴같잖은 나만의 철학을 하고 있는 건가? ㅋㅋ < 이 말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위선으로 보이니 어처구니가 없을 노릇이다.

 

결국 난 오늘 김연아 선수 방송을 보지 않겠지. 1등 하기를 바라며 마음 졸이는 우리 엄마가 야속해서.

좋아보이는 대기업에 취직한 나를 너무 자랑스러워하던 엄마가 미워서.

지금의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니어도 과연 지금처럼 나를 생각해줄까 엄마에게 궁금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끝.